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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를 바로 알아간다는 것의 소중함. 나눔의 집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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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25. 16:27

ㅣ나눔의 집


안녕하세요, 가꿈사 가족 여러분! 프론티어 기자단 전정민입니다. 얼마 전까지 일본 정치인들의 위안부망언이 화제가 되어 뉴스와 각종 매체에서 다루었던 것을 알고 계신가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역사를 덮어버리려는 일본 정치인들의 만행에 저는 화가 나고 허탈하기까지 했답니다. 여러분들도 같은 마음이셨을 거로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요? 위안부라는 말을 많이 듣긴 했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들이 있기도 할 텐데요, 그래서 이번 기사를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이 생활하고 계신 나눔의 집과 일본군 위안부역사관을 소개해 드리고 실제적인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리고자 해요.


이번 기사는 프론티어 기자단 2기로 활동하며 작성하는 마지막 기사이기에 더욱 신경을 많이 써서 주제를 선정하고 기사화했답니다. 최대한 사실적이고 꼭 필요한 부분들을 포함하였으니 끝까지 관심 어린 시선으로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나눔의 집 찾아가는 길



나눔의 집은 일제의 성적 희생을 강요당했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계신 곳이에요. 그리고 이곳에 일본군 위안부역사관이 있어요.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주소: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 65


대중교통 이용 시


① 8호선 모란역→ 버스3-1번(14km, 약 50분)→ 파라다이스 아파트→ 택시(9km, 약 20분)→ 나눔의 집


② 1호선 수원역 북측광장→ 버스60/660번(41km, 약 120분)→ 파라다이스 아파트→ 택시(9km, 약 20분)→ 나눔의 집


③ 2호선 강변역 테크노마트 앞→ 버스 1113-1/1113번(27km, 약 60분)→ 파라다이스 아파트→ 택시(9km, 약 20분)→ 나눔의 집


승용차 이용 시


① 광주IC : 광주IC에서 좌측유턴→ 퇴촌 방향


② 팔당 : 하남→ 팔당대교→ 팔당댐→ 도마리 삼거리 좌회전→ 광동교→ 퇴촌사거리 우회전→ 경안천 습지공원→ 정지리→ 원당리 나눔의 집


③ 양평 : 양평 대교 우회전→ 천진암 사거리 직진→ 정지리 삼거리에서 원당리 방향→ 나눔의 집

 


 나눔의 집 역사관을 통해 우리 역사를 바로 아는 시간을 가져보아요.


※ 역사관 실내에서의 사진 촬영은 불가하나 나눔의 집 안신권소장님 허락하에 촬영했음을 밝힙니다.

 


우리 역사 바로 알기



위안부할머니들에 관한 이야기는 전부터 있었지만, 김학순 할머니께서 1991년에 최초로 등록하시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현재 국내외에 59분의 위안부할머니가 생존해 있으시고 현재 나눔의 집에 10분이 들어와 계세요






원래 ‘위안부’라는 것은 없었어요. 그런데 일본군이 침략한 도시에서 여자들을 강간하자 반일감정이 생기고 성병도 많이 생겼어요. 성병은 곧 일본군 전투력의 손실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위안소를 운영하기 시작하였는데 처음엔 일본인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했어요. 그러나 일본여성들로는 인원이 부족하고 자신의 나라 여성들이 위안소에서 일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 다른 나라 여성들을 데려오기 시작한 것이죠.

 

추정하기로 우리나라에서만 만 10~40세 여성들, 인원은 약 20만 명의 여성들이 끌려갔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해요. 그리고 강원도, 경상도, 부산에 거주하던 여성들을 위주로 데리고 왔는데 그 이유는 배를 타고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곳이 위의 지역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위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바로 위안부라는 단어로 전부 표기한 것인데요, 이는 ‘위안부’라는 단어의 특수성 때문이에요. 위안부란 일본군이, 자신들을 위문한다는 뜻에서 지칭한 것이에요.

그러나 할머니들께서는 우리가 피해자인데 왜 ‘위안부’라는 용어를 쓰느냐며 일본군 성피해자라는 용어를 쓰신다고 합니다. 위 사진에 나온 것처럼 그리고 할머니들의 말씀처럼 ‘성 노예’, ‘성폭력 피해자’라는 표현이 문제의 본질을 잘 드러내지만, 일본군 ‘위안부’라는 표현은 현재 역사적 용어로 사용되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은 종군위안부라는 표현이에요. 이는 절대 쓰면 안 되는 용어에요! 종군위안부란 본인 스스로 위안부의 위문단체를 결성했다는 것을 뜻해요. 그래서 종군위안부는 일본에서만 사용하고 있다고 해요.






‘위안소’가 공문서 등으로 확인된 지역


‘위안부’ 피해 여성의 증언으로 밝혀진 지역


부대 기록, 전 병사 등의 증언으로 밝혀진 지역




위안소의 분포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한국, 일본, 중국뿐만 아니라 미얀마와 괌, 필리핀, 인도네시아 그리고 파푸아뉴기니까지 정말 광범위한 지역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오키나와 섬에만 알려진 것이 150여 개라고 하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위안소의 형태는 군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위안소와 민간에 위탁해서 운영하던 위안소가 있었습니다. 군의 입장에서는 군인들이 위안소를 이용할 때 내는 수입 외에도 탄광 노동자 같은 민간인들에게도 개방해 돈을 벌기도 했다고 합니다. 위안소는 주로 건물에 설치했지만, 건물이 없는 곳은 군용텐트로 대신했습니다. 이곳에서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은 하루에 최대 30명의 남자까지 상대했다고 합니다.






위에서 위안소를 운영한 이유에는 성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 콘돔을 나누어주었으나 이를 사용하지 않는 군인들이 있었고 콘돔이 모자라서 빨아 쓰는 경우까지 생겼다고 해요. 성병에 걸린 ‘위안부’는 그 지역에 버려진다고 하는데 ‘차라리 버려지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버려지면 상대군인의 포로가 되어 성 노리개로 반복되는 생활을 하는 경우 또한 있었다고 해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들은 8.15 광복 이후에 한국에 들어오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해요. 이는 돈 때문이기도 하고 피해의식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데요. 그래서 해외에 거주하는 할머니들이 많으세요. 그리고 현재 북한에는 8분 정도가 살아계신 것으로 추측하고 있고 중국에는 4분 정도가 생존해 있으시다고 해요. 유럽 피해자는 생존자가 없고요.




 나눔의 집 돌아보기







나눔의 집의 도착하면 할머니들이 생활하고 계신 건물과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사이에 고인이 되신 할머니들의 흉상과 비석이 세워져 있어요. 그리고 한편에는 여러 곳에서 할머니들께 보낸 응원의 편지가 달려있었어요.





 

다음으로 역사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답니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1998년 개관했어요. 위안부 역사관은 지상 2, 지하 1층 총 104평의 규모이며 일본의 전쟁범죄 행위를 고발하고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회복과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어요. 그런데 아쉬운 것은 역사관을 방문하는 관람객의 대부분이 일본인과 미국인 등의 외국인이라는 사실이에요. 


오히려 내국인 관람객의 숫자가 적고 더 줄고 있다고 하네요. '위안부' 역사관은 책에서 볼 수 없는 실제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곳이에요. 부디 많은 분이 방문하여 역사관을 돌아보고 우리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역사관 입구에는 위안부 최초 등록자이신  김학순 할머니의 말씀이 적혀있었어요.

 





 



역사관 내에는 당시 위안소의 모습을 재현해 놓기도 했는데요, 사진 속 방에는 전구가 달려있어 밝게 나왔지만, 당시에는 전구가 달리지 않던 곳도 많았다고 해요. 창문도 없는 좁은 방 안에 침대와 대야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 둘러보던 저조차도 두렵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데요, 저렇게 좁고 어두운 곳에서 수십 명의 일본군을 마주해야만 했던 소녀들을 얼마나 더 무서웠을까요?


그리고 이 사진에는 없지만, 실제 문 앞에는 일본군 대기자의 명패들이 걸려 있어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고 해요.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진과 실제 증언을 들을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한쪽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응원하는 편지와 그림 그리고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온 응원의 메시지 또한 많이 있었는데요. 잊혀 가는 역사인 것만 같아 슬프기도 했지만, 할머니들에 대한 작은 관심과 응원이 계속 이어지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도 들었어요.





전시관 2층은 할머니들이 생전에 사용하셨던 물건들과 직접 그린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어요. 그림 교육은 나눔의 집이 처음 생겼을 당시 한글 수업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요. 당시 자원 봉사자였던 화가 이경신 씨의 도움으로 그림 수업이 시작되었는데요, 여러 할머니 중 김순덕, 강덕경, 이용녀 할머니 세 분이 꾸준히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셨다고 해요.


처음엔 단순 사물 묘사 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자신들의 역사적 문제에 도달하게 되었다고 해요그래서  강덕경 할머니는 자신이 겪은 과거의 경험을 묘사하여 일본의 만행을 표현하셨 김순덕 할머니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과 연민 그리고 슬픈 과거를 잘 그려내셨어요.






이렇게 해서 역사관을 모두 둘러보았어요. 역사관 출구 앞에는 기념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나가기 전 엽서나 티셔츠, 책 등을 구매할 수도 있는데요, 특히 엽서는 할머니들의 그림이 앞면에 그려져 있어 더욱 뜻깊은 기념품이었어요.


지금까지 잘 둘러보셨나요사진과 함께 설명을 덧붙여 드렸는데요, 역사관 전부를 담아 드릴 수 없음이 아쉬워요. 그렇지만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여드리기보다는,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가꿈사 가족 여러분 모두 나눔의 집에 직접 찾아가 관계자분들의 설명과 함께 역사관을 둘러본다면 우리의 역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요.





역사관을 둘러본 뒤 프론티어 기자단은 할머니들께서 생활하고 계시는 생활관에 들러 인사를 드렸어요. 함께 봉사활동을 하던 친구들과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 찾아뵙고 인사를 드린 적이 있는데요,  7개월 만에 다시 오는 나눔의 집을 찾은 거죠. 


할머니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이옥선 할머니 방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답니다. 두 번째 사진은 방송인 김구라 씨의 사진인데요, 과거에 잘 못된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지만 이후 자주 찾아와 할머니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해요.  사진은 제가 나눔의 집에 방문해 할머니들과 시간을 보낸 사진으로, 소장님께 전달받았답니다.


할머니와의 이야기를 나누며 위안소에서의 끔찍한 생활에 대해서 직접 들을 수 있었어요. 때리고, 칼로 찌르고 죽이고. 강간까지 일삼던 일본군의 악행을 듣고 할머니의 몸에 새겨진 상처를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할머니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는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와 배상이라고 해요. 과거 일본의 배상이 있었지만, 국가책임에 의한 배상이 아니었고 피해자 전체가 아닌 일부만을 대상으로 했기에 공식적인 사과가 아니었던 것이죠.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 이어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지금이라도 자신들의 잘못된 역사를 인식하고 공식사과를 통해 남은 할머니들이 편히 눈 감으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역사는 덮는다고, 무시한다고 해서 잊혀지는 것이 아니죠. 이제 할머니들이 많이 계시지 않지만, 세계 각지에서, 그리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기에 ‘위안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변질하지 않고 올바르게 이어질 것으로 생각돼요.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은 매주 수요일 정오, 3호선 안국역에 위치한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수요시위에요. 수요시위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집회로 지난 수요일 (2013.07.24) 1,084회를 맞이했어요. 프론티어 기자단도 시간을 내어 친구들과 함께 참여한 적이 있는데요. 요즘은 어린 학생들이 많이 참여하여 할머니들에게 많은 힘이 되고 있답니다. 윗세대의 잘못을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본인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답니다.


가꿈사 가족 여러분은 수요시위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가장 오래 진행되었다는 이유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신가요? 기네스에 올랐다고 하면 ‘좋다’는 느낌을 받으실 수도 있는데요, 시위가 끝난다는 것은 일본정부의 공식사과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니 더 이상의 시위가 진행되지 않고 멈추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요. 여러분도 시간이 되시면 수요시위에 잠깐이라도 참석해 보세요.








나눔의 집은 국가지원이 아닌 민간 기관으로, 많은 분이 국가 운영으로 알고 계시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에요. 그래서 나눔의 집은 더 많은 분의 지지와 방문을 기다리고 있어요. 나눔의 집에서 자원봉사하기를 원하시는 분은 나눔의 집 홈페이지와 나눔의 집 다음카페를 통해 자원봉사 신청이 가능하며, 2013년까지는 유급자원봉사자도 모집을 받고 있으니 많은 분이 참여하면 좋을 것 같아요. 


또한, 후원도 가능한데요, 이를 통해 할머니들의 복지와 인권활동에 도움이 된다고 해요. 100% 소득공제가 된다고 하니 소액이라도 함께 하면 할머니들에게 많은 힘이 될 거에요. 마지막으로 네이버 해피빈에서도 기부가 가능해요. 이곳에 그동안 모아둔 모아두었던 콩을 기부하는 것도 할머니들께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돼요.



 

나눔의 집 홈페이지 : http://www.nanum.org


나눔의 집 다음카페 : www.cafe.daum.net/houseofsharing 


네이버 해피빈 : http://happylog.naver.com/nanum365.do 





우리의 아픈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 하루 정도 시간을 내어 친구, 가족과 함께 나눔의 집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 찾아가 보는 건 어떠신가요? 그리고 할머님들도 뵙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요.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앎으로서 할머니들께 작은 힘이나마 되어드릴 수 있다면 아주 좋을 것 같아요.



이번 주 금요일 프론티어 기자단 3기의 발대식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2기에서 연임하는 친구들도 있고 새롭게 뽑힌 분들도 계시다 들었는데요, 이젠 프론티어 기자가 아닌 블로그를 방문하는 네티즌의 한 명으로서 교보생명 공식 블로그 가족·꿈·사랑을 지켜보도록 해요! 새로운 기자단들 모두 응원 드리며 가족·꿈·사랑을 통해 즐겁고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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