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20. 10:13
✅ 에디터 PICK! 3줄 요약
✅ 광화문글판 2024 겨울편 교체 소식
✅ 추운 겨울을 녹이는 따스한 햇살처럼, 유희경 시인 <대화>
✅ 겨울편 문안의 주인공, 유희경 시인을 만나다
차가운 바람이 겨울을 실감케 하는 요즘입니다. 특히 올해 겨울은 첫눈부터 많은 양의 눈이 내려 모두를 근심케 했는데요. 조금은 이른 듯 찾아온 영하권의 추위가 시민들을 더욱 움츠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많았던 눈도 따스한 햇살 앞에선 녹아내리는 것처럼, 우리 곁의 온기는 추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곤 합니다. 겨울을 맞아 광화문글판 역시 추위를 이겨 낼 따뜻한 옷으로 갈아입었는데요. 지금 바로 만나볼까요?
# 추운 겨울을 녹이는 따스한 햇살처럼, 유희경 시인의 <대화>
2024 광화문글판 겨울편 문안은 유희경 시인의 <대화>에서 가져왔습니다. 제목과는 달리 독백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대화> 중, 광화문글판 겨울편 문안을 장식한 문장은 ‘오늘은 볕이 좋다. 아직 네가 여기 있는 기분’입니다.
추운 겨울에도 햇살을 통해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것처럼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해 보고 긍정적으로 살아가자는 격려를 전하고자 해당 문장이 선정되었는데요.
따뜻한 문장만큼이나 이번 광화문글판 겨울편의 디자인은 환하게 햇빛이 쏟아지는 전철 객실 안의 모습으로 보는 이들에게 온기를 선물하고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추운 겨울 눈을 녹이는 따뜻한 햇살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요.
여기에 바닥에 비친 그림자는 마치 나를 믿어주고 응원하는 소중한 사람들을 떠오르게 해 뭉클함을 안깁니다.
# 겨울편 문안의 주인공, 유희경 시인을 만나다
2024 광화문글판 겨울편 문안을 장식한 <대화>의 유희경 시인은 지난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으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난 2016년에는 시집 전문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을 열어 관심을 모으기도 했는데요.
시를 쓰는 사람이자 서점을 운영 중인 대표이기도 한 유희경 시인을 직접 만나 광화문글판 겨울편 문안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시집 서점을 운영 중인 서점지기이자 시인(임을 지향하는) 유희경이라고 합니다. 제가 10년 동안 서점을 운영하면서 느낀 건 ‘완벽한 시’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다들 완벽한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고 저 역시 그런 과정에 놓여있고요. 그래서 ‘시인’보다는 ‘시인임을 지향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Q. 광화문글판 겨울편 문안으로 선정된 소감이 어떤가요?
무척 기뻤습니다. 특히 저희 어머니가 정말 좋아하셨어요. 축하도 많이 받았습니다. 광화문글판을 보고 제 이름을 검색해서 서울까지 찾아오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사실 광화문글판이 걸리기 시작했던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저는 광화문글판을 동경의 눈빛으로 보아 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시인이 된 이후부터는 시샘과 질투가 섞인 축하의 눈빛으로 바라봐 왔고요. 늘 ‘나도 언젠가 저곳에 내 시가 걸렸으면 좋겠다’ 소망을 가져왔는데 그 소망이 이루어져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론 쑥스러웠습니다. 과연 제가 저렇게 중요한 자리에 걸릴 만한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Q. 겨울편 문안인 시 <대화>에 대해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대화>는 저한테 굉장히 집중해서 쓴 시였습니다.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대화’를 하게 되면 대화가 끝나고 혼자 남겨졌을 때 허전함을 느끼곤 하잖아요. 대화를 하면 나 자신을 상대방에게 완전히 내어주니까요. 마치 친구랑 헤어지고 나서 버스를 타고 돌아올 때의 허전함 같은 기분이랄까요? 그 기분을 이야기한 시입니다. ‘너랑 헤어지는데 왜 이렇게 쓸쓸한지 몰라’를 복잡하게 쓴 시예요(웃음).
광화문글판 겨울편에 <대화>의 한 구절이 올라가 있지만, 사실 시 전체를 보아야 해당 문장이 주는 느낌을 더 오롯이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Q. 작가님 시 중에 겨울과 어울리는 시를 추천해 주세요.
<겨울밤 토끼 걱정>이요. 겨울밤에 창밖을 봤는데 가로등 아래 토끼가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겨울밤 거리에 토끼가 있을 리 없잖아요. 자세히 보니 빵 봉투 같기도 한거죠. 정확하지는 않지만 토끼인지, 빵 봉투인지 모를 무언가가 겨울밤에 계속 생각난다는 내용의 시입니다.
제가 쓴 시 중 많은 것들이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제 시의 주된 주제가 저 자신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우리가 누군가에게 제일 다정하지 못한가 생각해 보면 바로 ‘나 자신’이거든요. 나에게 제일 엄격하고,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연스레 겨울을 배경으로 하는 시가 많아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시에서 온기를 갈구하곤 하죠.
Q. 광화문글판을 마주하는 대중에게 어떤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사실 저는 ‘시인’으로 남기보다는 ‘시’로 남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제 시 구절이 담긴 광화문글판을 보고 좋음을 느꼈다면, 그 시를 누가 썼는지 기억하지 못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어떤 시인이 된다기보다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시란 시를 쓰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제안과도 같아요. ‘이 세계를 이렇게도 바라볼 수 있어’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제가 제안한 생각이 이 세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Q. 광화문글판을 다섯글자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나라의 국격’이 아닐까요? 외신에서 부러워하는 것 중 하나가 광화문글판이에요. 외국인의 시선에서 광화문은 엄청나게 큰 수도의 중심인데, 그곳에 상업적인 광고가 아닌 시가 걸리는 글판이 있으니까요. 도시 한복판에 시를 걸어 놓는다는 건 이 나라가 어떤 근간을 갖고 있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시가 사랑받는 나라’라는 것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더라고요. 그래서 광화문글판을 ‘나라의 국격’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Q. 작가님은 시집 서점을 운영 중이신데요. 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시인들에게 명예의 전당 같은 곳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저의 첫 지향점이었습니다. ‘내 시집을 저곳에 꽂고 싶다’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요. 시인들에게 자부심을 만들어주는 공간이 되고 싶었고, 10년 운영해 온 지금 돌이켜보니 어느 정도는 그 목표를 이룬 것 같아요. 시인 분들이 외국에서 온 손님을 이곳에 데리고 오시기도 하거든요. 하하. 결론적으로는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한데 모이게 하고 시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저의 목표예요.
Q. 마지막으로 광화문글판을 마주하게 될 시민들께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제주도에 있는 학교 선생님이 어느 날 제게 DM을 보내셨어요. 제 시의 문장이 담긴 광화문글판 사진을 찍어 보내셨더라고요. 정말 힘들었던 하루였는데 광화문글판을 보고 힘이 났다는 말도 덧붙여 주셨습니다. 정말 기쁘고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보통 시는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시에는 뭔가 숨은 뜻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시잖아요. 그런데 그분은 제 시, 제가 쓴 문장을 그저 고스란히 받아들이신 것 같아서 묘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광화문광장을 지나시는 많은 시민분들도 그런 느낌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고스란히 받아들인 그 감각으로 이 겨울을 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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