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14. 19:01
ㅣ대중음악 속 군대 이야기ㅣ
병역이 젊은 남자 국민의 의무인 한 그것은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는 거의 운명과 같은 것이에요. 군대에 간다는 것, 어른들은 철이 드는 통과제의라고 불러왔지만 모든 젊음에 병역이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젊음 그 자체의 박탈이죠.
사회를 지배했던 시대적 풍경 |
대학교까지 교련 과목이 있었던 시절인 80년대까지는 한국 사회의 권력 자체를 군 출신들이 움켜쥐고 있었기 때문에 군대는 그야말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죠. 군대를 젊음에 대한 억압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대중문화의 영역에서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금기였으며, 그것은 당연히 엄숙하고 장엄하게 그려질 수밖에 없었어요.
유신독재가 극에 달한 70년대 중후반에는 한술 더 떠서 군가가 병영의 담을 넘어 한국 사회의 일상 자체를 지배했어요. 모든 학교와 관공서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군가 조의 국민가요(나중에 건전가요로 이름이 바뀌어요)가 나라를 뒤덮었어요. 모든 대중음악 음반의 마지막 트랙은 군가를 필수적으로 수록해야만 했던 문화적인 현상은 그야말로 병영국가의 풍경을 상징해요.
애국 충정 가득한 군인의 초상 |
60년대 말과 70년대 중반에 발표된 조영남의 <이일병과 이쁜이> 그리고 <점이>는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 속에서 참으로 흥미로운 노래에요. '부모님 말씀도 안 듣던 내가 조국의 부름에 따랐습니다 / 훈련소서 더벅머리 싹둑 잘릴 땐 서러움의 눈물을 흘렸지만은 / 지금은 산뜻한 군복을 입고 호미 대신 총을 멘 멋쟁이라오'로 시작하는 <이일병과 이쁜이>는 의무에 대한 흥겨운 예찬이랍니다. 이에 비해 훨씬 서정적인 <점이>는 '이 목숨 바치면 이 목숨 바치면 조국에 영광이 있으리니'라는 묵직한 후렴구로 마무리되는 비장하고 장엄한 희생정신을 독려하죠.
이 두 노래를 관통하는 것은 '이쁜이'와 '점이'라는 고향에 두고 온, 그러나 기약이 없는 젊은 여성이 모티브에요. 이토록 국가 주도의 계몽적 노래에도 군대와 젊은 애인은 마치 필수적인 요소처럼 동행하죠. 군대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곳이지만 동시에 젊음의 성적 억압이 제도적으로 강제되는 곳이기도 한 까닭이에요. 따라서 군대를 담은 대중음악에 애국 충정으로 가득한 군인의 초상만이 존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되었죠.
추상적 영웅에서 일상 속 개인으로 |
70년대가 저무는 1979년 최백호가 불러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입영전야>는 30여 년이 지난 아직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는, 군대를 다룬 대중음악의 명곡이랍니다. 이 노래가 발표 당시부터 젊은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은 군대와 군인을 교조적인 틀에 가두지 않고 입영을 하루 앞둔 평범한 젊은이들의 내면을 그야말로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게 일상 속으로 불러냈기 때문인데요. 이 노래에서 군인은 드디어 추상적인 영웅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기도 한 개인이 돼요.
이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비공식적으로 발표되었던 김민기의 <늙은 군인의 노래>도 주목할 만해요. 당시 공식적인 활동을 금지당했던 김민기는 군대에서 만난 늙은 부사관의 꿈을 소박한 선율과 강직한 리듬으로 담았는데, 이 노래 또한 유니폼에 갇힌 군인에게서 한 사람의 구체적인 인간을 끄집어내요. 김민기가 탁월한 것은 바로 군가 스타일의 곡조를 의도적으로 채택하면서도 전혀 다른 뉘앙스를 창출해냈다는 점이에요.
이 두 노래처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1978년 송창식의 <병사의 향수> 또한 놓칠 수 없는 곡이죠. 이 노래는 의무적으로 음반에 수록해야 하는 군가 대신에 스스로 군가를 만들어서 녹음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선동적인 군가와는 달리 고향의 어머니를 생각하는 젊은 병사를 창조한 송창식의 발상이 대단한 곡이에요.
입영에 대한 신선하고 발랄한 감수성 |
<입영전야>의 후속 노래는 1990년 윤상이 작곡하고 김민우가 부른 <입영열차 안에서>가 될 것이에요. 엄청난 인기를 누린 이 군대 노래는 입영에 대한 신선하고 발랄한 감수성이 아름답게 펼쳐져요. 이 노래는 신세대의 '입영전야'로서, 놀라운 사실은 당대의 여성 작사가 박주연이 가사를 썼다는 것인데요. <입영전야>까지도 존속했던 비장감은 여성적인 섬세함과 애틋한 서정성으로 대체되면서 완전히 사라지는 듯이 보였죠.
한편 'X세대'라고 부르는 새로운 감성이 대중문화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엎은 듯이 보였지만, 김광석이 불러 군대 노래의 정점을 찍은 <이등병의 편지>가 1993년 스매시 히트를 기록하면서 70년대 통기타 문화의 낭만주의는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해요. 이 노래를 만든 김현성은 접경지대인 문산에서 활동하던 무명의 통기타 뮤지션으로, 그는 자신의 음악적 뿌리에 해당하는 70년대 포크 음악의 어법으로 새로운 세대 청중의 지지를 열광적으로 이끌어냈어요. 그의 접근은 진지했지만 무겁지 않았고, 서정적이되 자아도취적이지 않았죠. 그리고 앞 세대의 입영 노래들이 애인이나 부모들을 동반할 때 그는 고향의 친구들을 떠올렸어요. 하지만 이 노래를 김광석이 부르지 않았다면 그토록 열렬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까요? 조영남의 보컬이 휘발성 강한 선동적인 톤이었고 최백호가 우수 짙은 서정을 품고 있었다면, 김광석은 명징하면서도 애상적인 울림을 완벽하게 구사함으로써 동시대 젊은이들의 공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해요.
21세기에도 계속되는 군대 노래 |
군대에 대한 노래는 새로운 세기에 이르러서도 끊이지 않고 발표됐어요. 2000년대 초반 자두의 <사나이 가는 길>이라든가 힙합 계열의 대표적인 군대 노래라 할 수 있는 더 골드의 <2년 2개월> 같은 노래를 꼽을 수 있을 텐데요. 그리고 펑크의 후예답게 매우 과격한 비속어를 거르지 않고 구사하면서 병역에 구금당한 젊음을 직설적으로 토로했던 크라잉넛의 <군바리>도 빠트릴 수 없어요.
하지만 21세기의 군대 노래들은 앞 시대의 대표작들에 비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그저 그런 반응으로 그치고 말아요. 한국 사회가 숨 가쁜 민주화의 경로를 달려오면서 군대가 더는 폭력적인 국가기구가 아닌 방향으로 진화되었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사단장이 직접 일반 사병의 가족들에게 이메일과 SNS로 동정을 전하는 시대가 됐어요. 하지만 완연히 달라진 군대 문화를 다룬 노래가 아직 없는 것을 보면 여전히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군대는 힘든 터널임이 분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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