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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문화유산, 파주 장릉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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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29. 17:46

발길이 닿는 어느 곳이든 푸름이 가득한 봄이 찾아왔습니다! 오늘은 눈의 피로함을 풀어줄 수 있는, 초록색으로 가득한 공간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바로 파주 장릉인데요. 파주 장릉은 조선 왕릉 중 하나로, 조선 16대 왕인 인조와 그의 첫 번째 왕비인 인열왕후가 잠들어 있는 합장릉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죠. 파주 장릉이 어떤 곳인지 둘러본 후에, 이곳에 숨어있는 푸른색의 비밀을 알려드릴게요. 자, 따라오시죠!


#인조와 인열왕후가 잠들어 있는 파주 장릉

재실 입구

조선 왕릉이 공간의 성격에 따라 진입공간, 제향공간, 능침공간의 세 가지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왕릉은 죽은 자를 위한 제례공간이므로, 동선의 처리에 있어 죽은 자와 산 자의 동선을 엄격하게 분리하고 죽은 자의 동선만을 능침영역까지 연결시켜 공간의 상징성을 부여했다고 합니다. 진입공간에는 재실이 있는데요, 재실은 관리자가 머물면서 왕릉을 관리하고 제향을 준비하는 곳입니다. 


금천교

능역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금천교'라는 석조물이 있습니다. 금천교는 '건너가는 것을 금하는 다리'라는 뜻으로 금천교 건너편은 특별한 영역, 즉 왕과 왕비의 혼령이 머무는 신성한 영역임을 상징합니다. 

홍살문

금천교를 건너면 진입공간에서 벗어나 제향공간에 도달하게 됩니다. 제향공간은 산 자와 죽은 자의 만남의 공간으로,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홍살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본격적으로 제향의식이 시작되는 지점 역시 바로 이 홍살문이라고 해요. 붉은 색의 화살을 닮은 걸 보니, 왜 홍살문인지 알 것 같습니다. 

수라간(왼쪽) / 수복방(오른쪽)

봉분이 있는 곳에 도달하기 전에, 주변에 여러 건물들을 볼 수 있는데요, 왼쪽에 있는 건물은 수라간으로, 제례 때 필요한 음식을 간단히 데우거나 조리했던 곳입니다. 그 맞은편에 있는 건물은 수복방으로, 능을 지키는 능지기가 임시로 머물던 곳이에요.

 

정자각

그렇다면 제향 공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은 어디일까요? 당연히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수라간이라고요? 능지기 없이는 제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니 수복방이 맞는 것 같다고요? 정답은 수라간도, 서복방도 아닌 '정자각'입니다. 정자각은 산릉제례 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사방이 개방되어 있어서 제사를 지낼 때 움직임을 편하게 합니다.

향로계(운계) / 어로계(동계)

정자각의 동쪽 계단은 두 곳으로 나뉘는데요, 두 계단 중에 하나는 향로계(운계)로, 측면에 구름문양을 새긴 장식이 있습니다. 이 계단은 '향로'라고 부르는 향을 모시고 가는 길과 이어집니다. 임금조차도 이 계단으로는 오르지 못하고 그 옆 간소하게 꾸며진 어로계(동계)를 이용했다고 해요. 임금이 오르지 못한 계단을 저라고 오를 수 있을까요! 저 또한 간소한 어로계를 밟고 정자각에 올라갔답니다. 

 


정자각의 오른 편에 거대한 비석을 볼 수 있습니다. 무덤 주인공의 표석을 놓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것이 바로 비각입니다. 이 비각 덕분에 능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어서 조선 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데에 유리했다고 해요. 말로만 듣던 기록의 중요성이 피부에 와 닿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문화재청(http://royaltombs.cha.go.kr/tombs/selectTombInfoList.do?tombseq=169&mn=RT_01_15_01)

드디어 능침공간에 도착했습니다! 능침공간은 봉분이 있는 왕릉의 핵심 공간으로, 왕이나 왕비가 잠들어 있는 공간입니다. 능침공간은 3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능침의 봉분은 원형의 형태로, 태조의 건원릉을 제외한 모든 능에는 잔디가 덮여있다고 해요. 그런데 여기서, 능침공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들이 보이시나요? 마치 왕릉을 호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쩌다 소나무 숲이 봉분 뒤에 조성된 것일까요?


# 소나무가 왕릉의 호위무사가 된 이유

봉분 뒤에 배경으로 자리 잡은 소나무 숲은 사실 계획적으로 조성된 '인공 정원'과도 같았습니다. 왕릉에 나무가 적을 때는 나무를 보충하고, 나무가 제대로 뿌리를 내렸는지를 왕에게 정기적으로 보고했다고 해요. 왕릉에 심은 나무의 수도 기록했고 함부로 벌목한 자는 엄하게 처벌했지요. 그야말로 숲은 '집중 관리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많고 많은 나무 중에서도, 왜 '소나무' 를 심은 걸까요? 세조 때 문신 강희안이 지은 원예 책 '양화소록'에 따르면 소나무는 명당의 기둥이요, 나무 중의 나무로, 제왕을 상징했다고 합니다. 또한 소나무는 십장생의 하나로, 왕조의 지속적 번영을 뜻하기도 하지요. 생태학적으로도 소나무 숲에는 지표를 낮게 덮는 지피식물이 자라지 못해 곤충이 없었고, 곤충이 없으니 개구리도 없어 그 결과 불길한 징조로 여겨진 뱀도 살지 못했다고 해요. 

죽은 뒤에도 소나무의 호위 속에서 권위와 위엄을 지닐 수 있었던 선왕들을 대신해 제가 소나무에게 직접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 장릉 숲 속에서 만나는 초록색 친구들

파주 장릉에는 장릉 주변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있는데요,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의 녹색 친구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먼저 왼쪽에 있는 나무는 느티나무에요. 느티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신령스런 나무, 즉 신목으로 꼽는데요.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우리나라에서 느티나무를 '밀레니엄 나무'로 선정한 것도 한민족의 삶에 느티나무가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느티나무는 여름이 잎이 무성하게 피기 때문에 봄인 지금은 가지밖에 없는데요, 땡볕이 내리쬐는 여름에 느티나무에 자라난 수북한 잎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느티나무 옆에 있는 나무는 오리나무인데요. 오리나무란 이름의 의미는 길 가던 나그네가 거리를 알 수 있게 5리마다 심은 나무이기 때문이랍니다. 습지에 강하고 뿌리가 많이 뻗기 때문에 홍살문 주변에 심어지기도 했다고 해요. 홍살문이 있는 곳이 지대가 낮은 습지여서 많은 비에 토양 유실을 막기 위한 기능을 고려한 것입니다. 나무가 가지는 특징을 미리 파악하고 이를 상황에 맞게 잘 활용하는 조상들의 지혜에 놀랐어요. 


이번엔 잣나무와 물푸레나무가 우리를 반겨주네요! 왼쪽에 있는 나무가 잣나무입니다. 우선 잣나무는 학명에 한국 원산임을 당당하게 기록하고 있는 나무입니다. 일본이나 중국에는 잣나무가 없다고 해요. 잣이 영양가가 높기로 유명하다보니, 과거에 신라 유학생들은 잣을 한 짐 메고 당나라로 가서 학비에 보탰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물푸레나무는 물을 푸르게 한다는 뜻으로 이 이름이 붙었다고 해요! 어린 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긴 후, 그걸 맑은 물에 담그고 한참 기다리면 물이 파랗게 물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이름과는 달리, 탄력과 내구성이 좋아 예전에는 주로 죄인의 볼기짝을 치는 곤장 나무로 쓰였다네요.


좀작살나무가 속한 마편초과의 '마편'은 말채찍을 뜻합니다. 이 과에 속한 나무가 말의 채찍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해서 붙인 이름인데요. 그러나 좀작살나무의 이름은 말채찍이 아니라 고기를 잡는 작살에서 빌린 이름입니다. 세 갈래로 벌어진 이 나무의 가지가 작살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좀작살나무는 뭐니 뭐니 해도 자주색의 열매가 돋보이는 나무인데요. 자생 관목류들의 열매를 보면 보통 빨간색이나 검은색이기 때문입니다. '작살'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과는 달리 신비로운 자줏빛 열매를 품고 있는 좀작살 나무의 매력이 느껴지시나요?

 

주소: 경기 파주시 탄현면 장릉로 90

문의: 031-941-4208

운영시간: 매주 월요일 휴관

             2~5월, 9~10월 09:00~18:00

             6~8월 09:00~18:30, 11~1월 09:00~17:30

입장료: 일반(만 25~64세) 1000원 

           청소년(만 7~24세) 500원


지금까지 파주 장릉이 어떤 곳인지 알아보면서 장릉의 산책길도 함께 둘러보고 왔는데요. 조선 왕릉이 본래 풍광을 해치지 않고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해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추구했던 조선의 자연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사실을 되새기며 앞으로도 이를 잘 보전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산책길에서 만날 수 있는 여러 자연물들 역시도 우리가 소중하게 아껴주고 애정을 쏟으며 후손에게 그대로 물려줘야 하고요. 햇살 좋은 날,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짚어 보며 싱그러운 기분을 만끽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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